이슈앤/ 조선 중기의 유학자 퇴계 이황은 명리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사주나 운명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을 삶의 주인공으로 세우지는 않았다.
남아 있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퇴계는 “사람에게는 타고난 기질과 흐름이 있지만, 그것이 곧 삶의 결론은 아니다”라는 태도를 평생 유지했다.
퇴계가 살던 시대는 명리학이 지식인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던 시기였다.
사대부 집안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사주를 보았고, 관직 진출이나 혼인 문제에서도 은근히 참고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퇴계는 자신의 삶을 ‘정해진 틀’이 아니라 ‘스스로 다듬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제자들과의 일화를 보면 이 점이 더 분명해진다.
제자 가운데 누군가가 사주 이야기를 꺼냈을 때, 퇴계는 그 해석을 길게 늘어놓기보다 공부와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했다고 전해진다.
타고난 기질이나 시기의 흐름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것을 이유로 삶의 책임을 밖으로 돌리는 태도는 경계했다.
사주는 참고할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명리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퇴계의 태도는 특별히 어색하지 않다.
전통 명리에는 오래전부터 “명은 하늘에 있고, 운은 사람에게 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사주팔자는 타고난 구조를 보여 주지만, 그 구조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펼쳐질지는 환경과 선택,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 간다는 인식이다.
퇴계의 삶은 이 말과 꽤 잘 어울린다. 그는 화려한 정치적 성공이나 큰 재물을 쌓는 길과는 거리가 있었다.
관직에 나아갔다가도 뜻이 맞지 않으면 물러났고, 말년에는 학문과 제자 교육에 집중했다.
명리적으로 ‘출세 운’만 놓고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인생일 수 있지만, 삶의 깊이와 영향력만큼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사주는 삶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도에 가깝지만, 그 지도를 어떻게 읽고 어디로 걸어갈지는 결국 각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지도만 들여다보다가 한 발도 떼지 않으면 아무 곳에도 도달할 수 없고, 반대로 지도를 무시한 채 걷다 보면 같은 자리를 빙빙 돌 수도 있다.
오늘날 명리학이 다시 관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말보다, 지금의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언어를 원한다.
사주가 가장 쓸모 있어지는 순간은 정답을 단정적으로 말해 줄 때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게 할 때다.
퇴계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이 점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주는 이미 정해져 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 위에 새로 쓰인다.
그리고 그 여백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이슈앤 = 혼계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