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논란 중 하나는 바로 '새벽배송'을 둘러싼 존폐 여부다.
일부 노동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택배 노동자의 건강권과 과로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심야 배송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견 타당한 명분이지만, 현실을 외면한 ‘금지’라는 단 하나의 해법으로는 이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없다.
새벽배송은 이미 소비자의 필수적인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맞벌이 부부, 1인 가구, 시간 활용을 중요시하는 청년 세대에게 출근 전 신선한 식재료나 생필품을 문 앞에서 받아보는 경험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 일상을 지탱하는 '효율'의 영역이다.
게다가 새벽 배송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에게 이는 근무 시간 선택의 자유와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전면적인 금지는 소비자 편익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할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본질, ‘배송 시간’이 아닌 ‘노동 조건’-
새벽배송 논쟁의 핵심을 꿰뚫어 봐야 한다. 과로사의 주된 원인은 새벽 '배송' 자체보다는, 물류센터 내의 분류 작업과 과도한 물량 할당,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저단가·저임금 구조에 있다.
실제로 산재 통계는 분류 작업 등 물류 시스템 내의 비효율과 강도 높은 노동 환경에서 위험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해법은 단순히 특정 시간대 배송을 금지하는 '규제’에 머물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 개선’과 ‘노동 조건 정비’라는 내실 있는 대안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의 칼이 아니라, 새벽배송 산업을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모델로 발전시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기업의 책임 있는 행동이다.
과로의 가장 큰 원인인 분류 작업을 전적으로 택배 기사가 담당하지 않도록 물류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기업이 충분한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1일 최대 근무 시간 제한, 최소 연속 휴식 시간 의무화등 실질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심야 노동의 유해성이 인정되는 만큼, 해당 시간대에 근무하는 노동자에게는 낮 근무 대비 충분히 높은 임금(야간 근로 수당)을 지급하여 공정한 보상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물류 자동화, AI 기반 경로 최적화 등 기술 혁신을 통해 불필요한 노동 강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새벽배송을 포기하는 것은 국내 유통 산업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스스로 한 발 물러나는 것과 같다.
특히 알리, 테무 등 해외 이커머스 플랫폼이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해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 보호와 산업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균형’의 지혜가 시급하다.
새벽배송 금지라는 단순하고 표면적인 해법 대신, 노동자·소비자·기업 모두의 이해관계를 조화롭게 반영하는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숙제이기도 하다.
[이슈앤 = 김창권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