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공에서 대통령 당선 확실 이재명 후보는 누구인가?

최문봉 기자

happyhappy69@daum.net | 2025-06-04 01:23:55

소년공과 시민운동가, 경기지사 거친 입지전적 성공신화 인물
대선 3번 도전에 성공 최고국정운영자 자리에 올라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대통령의  제1의 책무는 국민을 갈라치기 아닌 국민통합"
"국민과 함께 희망의 새벽을 확실하게 열어 젖히겠다"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사진=민주당)

이슈앤/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되는 이재명(61)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개천에서 용났다'는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이 후보는 스스로를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라고 할 만큼 철저한 가난을 딛고 일어서야 했다.

그는 지난 5월 12일 6·3 대선 출정식 유세에서 " ‘세상을 밝게 비추는 문’, 광화문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는 칠흑같은 내란의 어둠을 물리쳤다"며 "빛의 혁명을 시작한 이 곳에서 첫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의미를 남다르게 가슴에 새기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12.3 내란은 대한민국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내몰았고, 지금도 헌법까지 무시하는 내란 잔당들의 2차, 3차 내란은 계속되고 있다"며 " 저들의 반란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저는 오늘 국민에 대한 강고한 믿음을 가슴에 품고, 헌법 제1조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바로 이 ‘국민주권의 현장’ 광화문에서 국민과 함께 희망의 새벽을 확실하게 열어 젖히겠다"고 피력했다.

이 후보는 최근 발간한 회고록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서 “내 인생은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다” 고 적었다. 소년공과 시민운동 가를 거쳐 경기지사 등 굵직한 직을 맡으면서도 대체로 비주류의 길을 걸어 왔다.

특히 이 후보는 지난 대선 이후 거대야당의 확고한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민주당 대표를 연임했고, 당은 친이재명계 위주로 재편됐다. 또 구 여권의 공격과 사법리스크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을 거듭해 온 그가 약점을 극복하고 국정운영 최고책임자로 올라서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 후보는 경북 안동시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공식적으로 1964년 12월22일생이지만, 1963년 10월 태어났다고 한다. 곤궁한 형편탓에 출생신고를 제때 하지 못했고, 이후 어머니가 점쟁이에게 물어 생일을 정했다고 전해진다.

이 후보는 1976년 안동 삼계국민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으로 이주했다. 12세에 동마고무에서 소년공 생활을 시작했다.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프레스에 왼쪽 팔뚝을 찍혔다. 이 사고로 6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또한, 그는 소년공 시절 구타를 당하곤 했다. 이 후보는 2017년 발간한 '이재명은 합니다' 에서 당시 ‘자유로운 삶’을 “남에게 쥐어 터지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고입(1978년)과 대입(1980년)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노동법·기본권 학회에서 활동 했다. 당시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일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듣고 인권변호사의 뜻을 굳혔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어
중앙대 입학후 어머니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민주당)

이 후보는 1989년 성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고, 1994년 성남시민모임(성남참여연대) 창립에 깊이 관여했다.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제기,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 제기를 주도했다. 다만 이 후보는 파크뷰 사건을 취재하던 KBS 프로듀서가 검사를 사칭해 김병량 당시 성남 시장을 취재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혐의로 2003년 7월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과 분당갑 국회의원 도전에 실패한 뒤 2010년 성남시장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즉각 광폭 행보를 폈다.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3년 만에 부채 4572억원을 갚았다. 숙원사업이던 성남시립의료원도 2013년 착공했다.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 뒤에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청년 배당, 중학생 대상 무상교복 지원을 현실화했다. SNS도 적극 활용했다. 이때 결성된 지지자 모임 ‘손가락 혁명군’은 이 후보의 핵심 지지세력이 됐다.

중앙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6년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성남시 등 경기도 6개 지방자치단체의 세입 5000억원을 다른 지자체에 배분하기로 하자 11일간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해 10월 ‘박근혜-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고, 제도권 정치인으론 처음으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하야를 공개 주장했다.

이 후보는 이어 지난 2017년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다. 문재인(57.0%)· 안희정(21.5%) 후보에 이어 3위(21.2%) 를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반문재인(반문) 이미지가 굳어졌다. 2018년 경기지사 민주당 경선에서도 친문재인(친문) 진영과 부딪혔다. 본선에선 ‘형수 욕설 논란’과 ‘여배우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경기지사 당선 후에는 선거토론 중 “셋째 형 정신병원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한 부분 등이 문제가 돼 허위사실 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다. 2심 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020년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해 기사 회생했다.

특히, 이 후보는 경기지사 시절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결단력 있는 행정가 이미지를 굳혔다. 도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고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시설을 강제 봉쇄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을 비판해 논란이 됐다. 이는 ‘기본소득’이 이 당선인 정책의 상징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이와함께 경기도 계곡 불법영업 정비 등 과감한 행정력도 선보였다. 90%대의 높은 공약 이행률 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2021년 민주당 20대 대선 경선에 나서 후보로 선출됐다.

당시만 해도 비주류 이미지가 강해 경선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후보와의 맞대결은 이 후보와 당에 상처를 남겼다. 경선과정 에서 불거진 이른바 ‘대장동 이슈’는 두고 두고 악재가 됐다. 

특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대장동 개발 비리의혹 등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당시 이 후보 핵심측근은 “지난 대선 당시 대장동 늪에 빠졌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후보는 지난 20대 대선에서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때 높아진 비호감도는 현재까지도 이 후보의 해결 과제로 꼽힌다. 그결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0.73%포인트 차이로 패하며 대선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이어 이 후보는 21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로 대선 본선에 진출했다. 세 번째 대선 도전, 두 번째 본선행이다.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14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끌어냈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장기화하자 광화문광장에 천막당사를 설치하는 등 거리로 나섰다. 

그결과 헌재는 결국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고, 이 후보는 지난 5월 10일 21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위대한 대한국민의 훌륭한 도구, 최고의 도구 이재명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 후보는 지난 2일,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서울 집중유세에서 "빛의 혁명이 시작됐던 이곳 여의도에서 우리가 빛의 혁명을 완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이 당선인은 "대통령의  제 1의 책무는 국민을 갈라치기 하지 않고 국민을 하나로 모아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슈앤 = 최문봉 기자] 

[ⓒ 이슈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